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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Stop Questioning !

2023 01 01 메타버스는 과연 의미가 있는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메타버스입니다. 마치 미래는 가상의 세계로 바꾸어지 질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증강현실, 가상현실, 혼합현실 등 다양한 기술적 도전들이 마치 세상을 바꿀 듯이 무수한 가능성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더더욱 대면이 아닌 온라인의 활동이 대세가 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교육에서도 메타버스를 언급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메타버스라는 또 하나의 세상이 유의미하게 인간의 삶에 들어 올 수 있을까요? 기술적으로 MMORPG에서 이미 대부분의 가상세계의 상상력이 구현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게임일지라도 이미 또 하나의 나로 세상을 만들고 살아가는 경험으로는 충분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가상의 세상을 꿈꾸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환각입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 벗어나고 싶은 현실을 잊게 하는 탈출구가 환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편이라는 것이 사회를 파괴하고 인간의 삶을 망치곤 하였습니다. 어쩌면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시대를 넘어 보편적인 것일지 모릅니다. 다른 예로는 수 많은 문학작품들이 있습니다. 단지 눈 앞에 현실처럼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상상력 속에서 다양한 새로운 인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큐멘터리와 같이 실제의 상황이 아닌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인 것입니다. 마치 주인공이 된 것 같고, 함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메타버스가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환각제는 삶을 황폐화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이유로 규제되고, 드라마와 영화 역시 표현과 수사에 있어서 제한적이더라도 규제가 존재합니다. 게임도 분명 우리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만 반드시 진짜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쩌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결국 현실로 돌아와버리고 말았던 이러한 일탈의 한계를 메타버스에서 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진짜의 삶과 경계가 허물어진 가상의 세계를 꿈꾸고, 현실과 가상이 혼돈되는 연결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메타버스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사람은 여기에 기대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지만 인간은 우리의 기대이상으로 현명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현실이 무엇이고 가상이 무엇인지 순간의 현혹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구분해 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현실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망상이 결국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모르는 메타버스라는 세상이 마치 기술이 발달하면 나타날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길 바랍니다. 메타버스를 꿈꾸기 보다는 눈 앞의 실체과 상황에 철저히 마주하는 진지함을 갖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현실을 뛰어 넘은 가상이 존재하고, 현실보다 낫지는 않아도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꿈은 과연 가능한지 냉정히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온라인에서 표정과 태도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 맥락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만으로 소통하거나 전혀 인간스럽지 않는 캐릭터의 어색한 표정에서 공감과 감정을 찾아야 하는 억지는 결코 기술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차라리 잠시라도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오락으로서의 게임이 더 솔직하지 않을까요?
메타버스라는 용어로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창조주인체 하지 말고 실제 삶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수단으로서으로서의 기술이기 바랍니다. 2023년은 자신이 마주한 진짜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Let’s Make the Bowl itself Bigger !


많은 사람들이 역량중심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과연 역량을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갑니다. 꽤 오랫 동안 역량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어 왔고 많은 교육과정에서 명시적으로 역량중심을 이야기하지만 왜 그 성과가 미미할까요?

 

제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을 지식의 순으로 평가하라고 하면 쉽게 평가할 수 없지만 역량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라면 이미 머리 속에 몇몇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지금까지 역량중심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한 이유는 지식의 양과 역량이 비례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늘면 역량이 늘까요? 지식이 적은 사람은 역량도 낮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은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이고 역량은 그릇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그릇에 많은 내용물을 담으려면 결국 대부분의 내용물은 밖으로 쏟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계속 내용물을 붓는 상황이라면 이미 작은 그릇에 담겨진 것 외에는 모두 밖으로 쏟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지식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릇 자체를 키워야 합니다. 따라서 역량을 키우는 과정은 내용물을 붓는 과정이 아니라 그릇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지식과 역량이 비례한다고 생각하면 지식을 늘리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역량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식이 는다고 반드시 역량이 커지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비례 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릇은 지식이 아니라 그릇의 재료가 주어져야 커지게 됩니다.

 

이처럼 그릇을 키우는 과정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과 다릅니다. 지식은 이해하고 암기하면 되지만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외국의 교육과정은 왜 과목이 적을까요? 심지어는 각 과목에서 제공하는 지식의 양도 적은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그릇 자체를 키울 수 있는 기회와 과정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까지 학습한 양은 적을지라도 대학과 그 이상의 공부에서 세상에 의미있는 결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릇은 학습력을 의미합니다. 큰 그릇은 조금 비어 있을지라도 필요한 경우 충분히 담아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지식이 없더라도 필요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채울 공간이 있는 것이지요.

 

만약 진짜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고 싶다면 접근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작은 그릇에 퍼붓지 말고 그릇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을 주어야 합니다.

 

지식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릇에 담을 내용물은 물같은 수도 있고, 쌀 같을 수도 있고, 상자같을 수도 있습니다. 지식은 기본적인 개념과 원칙을 중시할 수록 액체와 같고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담으려고 하면 상자같아집니다. 덩어리가 커지죠. 그런데 이런 형태의 지식을 작은 그릇에 담아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액체나 쌀 같은 것은 아무리 작은 그릇이라도 담길 수 있지만 상자는 몇 개 담지 못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도 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크지 않은 그릇에는 그 그릇에 맞는 지식을 담아야 합니다. 초등학생이 제게 와서 양자물리나 미적분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과연 그 아이가 알고 있다고 하는 지식은 무엇일까요? 단지 빈 상자에 붙어있는 라벨이지 않을까요?

 

진짜 역량을 키우고 싶다면 지식의 양보다는 그릇 자체를 키우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조급함에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적은 것이라도 안전하고 확실히 그릇에 담을 수 있도록 양을 줄이고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 대신 아이들이 그릇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작은 지식이라도 융합할 수 있는 기회, 그릇을 튼튼히 만들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미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이고 이 시대에는 그릇의 크기가 역량이기 때문에.